전이의 시쓰기

2020-10-04

김서경, This Flower does not like Korean Novels에 수록된 글.


『alternative of alternative literature』에 묶인 시는 작가의 일기를 구성하는 영문 단어에 마르코프 연쇄라는 확률 기반 구조를 적용하여 생성된 문장을 선별해 쓰였다. 마르코프 연쇄는 시점에 따라 어떤 상태가 변화하거나 지속되는 과정을, 일련의 확률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시점에 따른 상태란 예를 들어 매일 오전 9시에 관측한 날씨가 맑은지 흐린지나, 매시 정각마다의 주식 가격이 직전 시점보다 오르는지 내리는지 그대로인지나, 어떤 문장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이루는 각 어절이 어떤 단어인지 등을 말한다. 마르코프 연쇄는 간단한 가정 아래 작동하는 추상화된 모델로, 그 가정은 특정 시점의 상태는 오직 그 직전 (혹은 직전의 n개) 시점의 상태에 의해서만 확률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작업에 사용된 모델은 작가의 일기를 바탕으로 가능한 경우의 수, 즉 나올 수 있는 단어와 상태 간 전이, 즉 어떤 단어 다음에 다른 특정 단어가 나오는 상황의 확률을 계산하여 만들어졌다. 개인적 일기를 통계로 추상화하는 과정에서, 글쓰기라는 주관적 행위는 상태 즉 단어 사이의 선후관계와 빈도를 가늠하기 위한 자료 작성의 역할을 수행한다.

한편 통계 기반 알고리즘을 이용해 일기라는 상태를 생성된 문장이라는 상태, 다시 시의 형태로 선별 편집된 상태로 변환하는 과정은, 그 전에 한국어로 쓴 일기를 영문으로 기계번역하는 과정과 맞물려 확률적 추상의 결을 한층 두텁게 한다 (구글 번역 또한 상관 패턴과 확률에 강하게 의존한다).

시는 위에서 말한 확률 모델을 작법의 도구이자 허용되는 표현의 한계로 삼아 쓰였다. 자신이 일기에 이미 적은 바 있는 단어 외에는 어떤 것도 사용할 수 없고, 더구나 이미 사용한 적 있는 단어의 순서 (이 작업의 경우 연속되는 3개 단어의 순서) 외에는 사용할 수 없는 제약을 걸고 진행된 이 시작(詩作)에서 창작의 무게중심은 쓰기보다 고르기로 이동한다.* 글쓰기에 있어 단어를 고르는 일은 물론 중요한 요소이나, 기계가 모델의 조건에 맞는 문장을 생성하고 작가가 그것을 골라 시를 작성하는, 확률에 기반한 이 과정에서 글쓰기는 말 그대로 고르기의 과정이다. 어떠한 원전을 사용할지, 생성 모델의 속성값을 어떻게 설정할지, 생성된 문장 중 어떤 것을 취할지 고르는 선택과 취합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이 시집은 선집(選集) 그리고 영어의 poetry collection이라는 표현에 절묘하게 부합한다.

마르코프 모델에서 문장에 연이어 나오는 단어는 서로 상관성을 가지며 이런 시간적 즉 순서상의 상관성을 기억성이라고도 한다. 매 단어를 고를 때마다 직전 2개 단어만을 고려하는 마르코프 연쇄의 초단기 기억은 작가의 기억을 기록한 일기의 파편들로 이루어진 잠재적 가능성의 공간을 누빈다. 더 긴 맥락이나 그 어떤 문법을 알지 못하는 기계는 오직 연속적 패턴을 근거로 문장을 뱉어낸다. 자유연상과도 유사한 동작에 다시금 의도를 부여하는 것은 앞서 말한 작가의 선택적 개입이다. 하우와 소더먼이 생성(generative)의 어원에 엮인 재능(genius)과 체계(engine)의 관계에 관해 지적하듯, 생성문학 작업에서 방점을 둘 부분은 기계가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는 배타성이 아니라 서로 공생 협력하는 과정이다.**

한편 음식-요리, 신체-의복, 감정-감각에 관한 서술이 뒤섞인 문장을 읽는 독자는 앞뒤 맥락을 재조립하며 의미를 찾고 구성한다. 작업의 재료인 일기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표현의 조각에서 원래의 글을 상상하는 행위로 말미암아 읽기는 더 복합적인 층위에서 수행된다. 텍스트는 쉬이 읽히다가도 특유의 이질성이 묻어나는 순간 손을 뻗어 확률적 기계를 가리킨다. 그러나 기계에 가닿은 생각은 이내 작가의 고르는 손을 매개 삼아 시로 돌아온다. 기계가 생성한 문장에서 (주어지지 않은) 원래의 일기로, 다시 눈앞의 시로 오가는 해석의 왕복 과정은 생성예술의 공생적 창작 과정을 반영할 뿐 아니라, 상태를 전이하는 마르코프 연쇄와도 닮아 있다.

* Jeremy Singer-Vine, “README.md,” Markovify: A simple, extensible Markov chain generator, https://github.com/jsvine/markovify.
** Daniel C. Howe, A. Braxton Soderman, “The Aesthetics of Generative Literature: Lessons from a Digital Writing Workshop,” Hyperrhiz 06 (Fall 2009), http://hyperrhiz.io/hyperrhiz06/essays/the-aesthetics-of-generative-literature-lessons-from-a-digital-writing-worksho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