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참사를 막아주지 않는다

2022-11-10

alookso 재직 당시 게재한 글.


기획 의도

이태원 참사의 발생 원인, 책임 소재, 예방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관련 데이터(유동인구, 대중교통 이용량 등)가 존재함에도 활용되지 못한 데 대한 지적과 함께, 유사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스마트시스템의 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등장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드론 기반 인파 관리 시스템을 언급하는가 하면, 이준석은 지하철 무정차 통과 판단을 데이터 기반으로 자동화해야 한다고 발언하며 NIA 원장은 스마트시티를 통해 이태원 참사 재발을 막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는 데이터와 센서가 부족해서, 또는 시스템이 충분히 자동화되지 않아서, 도시가 충분히 데이터 플랫폼으로 기능하지 못해서 발생한 일이 아니다. 데이터는 이미 차고 넘친다. 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은 그 어떤 기술적인 부족함보다, 그것을 손에 쥐고도 안전을 위한 자원 분배를 하지 않은 의사결정의 못남에 있을 것이다. 참사 전날 이미 (첨단 센서가 아니라) 일간지에 당일 인파가 10만명으로 예상된다고 보도되었는데도 충분한 사전 안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인적 구조가 있는데, 그 어떤 정밀한 실시간 인구 측정 기술이 도입된들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을까? 기술이 오작동해서 생긴 문제가 아닌데 기술적 해법을 주장하는 것은 그러므로 책임 소재를 의사결정으로부터 기술적 미비 쪽으로 떠넘기려는 시도이며, 주장하는 바를 달성하지 못하는 기술만능주의-테크노쇼비니즘에 불과하고 오히려 참사를 빌미로 국가 감시와 감시 자본주의를 확장하려는 정치 아젠다의 혐의가 짙다. 사회의 문제는 기술 장비로 해결할 수 없다. 참사를 막는 것은 정치다. 데이터가 재난을 막아주지 않는다.

red and white tape. Photo by Chanhee Lee on Unsplash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한 기술적 제안들

10·29 참사의 충격이 여전합니다. 수많은 사람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사전 대비 및 현장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를 파악하고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고, 앞으로 이런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한 대책 또한 각계각층에서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기술에 관해 어떤 공통된 태도를 보이는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요.

요컨대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데이터 수집 강화, CCTV 영상 자동 분석, 의사결정 자동화, 드론 등의 ‘스마트’한 기술적 해법을 제안하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첨단 자동화 기술을 더 도입하여 문제 재발을 막자는 제안은, 이번에 일어난 참사 역시 기술적으로 무언가 모자랐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진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우리 손에 더 좋은 장비가, 더 많은 데이터가 쥐어지기만 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참사는 기술적 미흡에 기인했나?

그러나 여러 언론 등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참사 당일의 인파 상황은 이미 구현된 기술 시스템으로도 충분히 파악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몇 가지만 살펴볼까요.

  •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서울 실시간 도시데이터는 공공기관이 보유한 데이터와 KT 기지국에서 수집한 신호 데이터를 취합해서 제공하는 플랫폼이며, 이 중 실시간 인구 현황은 KT 데이터와 지역 정보를 활용해 추정한 5분 단위의 자료입니다. 경향신문이 해당 데이터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참사 사고가 발생한 10월 29일 밤 10시 즈음 이태원관광특구에 5만7천여 명이 머무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시점은 10시 50분경으로, 50m x 50m로 나눈 구획에 최대 2천9백여 명(추정)이 위치했습니다. (인터랙티브 차트 보러 가기)
  • 통신 기지국 데이터가 아니라도 유동인구를 모니터링하는 공공데이터는 존재합니다. 서울시는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스마트서울 도시데이터 센서(S-DoT)로 10분마다 반경 150m 이내 유동인구를 측정하여 서울 열린데이터 광장에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2021년까지는 일반에 각 센서의 위치정보 또한 제공했으나 2022년 11월 기준으로는 보안을 이유로 제공하지 않는다고 안내하고 있는데요. 일반인에게 꼭 제공하지 않더라도 서울시 측에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입니다.
  • 유동인구뿐만 아니라 차량 운행에 관한 데이터도 존재합니다. 서울시 종합교통관제센터에서 제공하는 교통정보 시스템(TOPIS)에서 도로 구간-시간대별로 평균 운행 속도와 교통량 등을 매월 공개하고 있습니다. 2022년 10월 운행 속도 자료에 따르면 참사 현장과 가장 가까운, 녹사평역과 제일기획에서 각각 이태원역을 향해 뻗어있는 구간은 참사 당시 평균 시속 1km대로 정체 상황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핼러윈 주말에도 비슷하게 정체가 심한 시간대가 있었다는 점에서, 위급시 교통 정체에 따른 부상자 이송의 어려움 또한 사전에 예상 가능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서울시 지하철 승하차 인원 정보버스 승하차 인원 정보 등 대중교통 이용량 또한 인파를 파악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이미 구축된 데이터입니다. 언더스코어 강태영 대표의 시각화에서 보듯 핼러윈은 언제나 이태원 지역이 붐비는 시기입니다.

특정 지역에 몰리는 인구 관련 자료는 공공데이터로 일반에 제공되는 것만 해도 위에 열거한 사례를 포함해 이미 다수가 존재합니다. 더구나, 참사 전날 각종 언론 보도에서는 다름아닌 용산경찰서의 10월 27일 보도자료를 인용하여 하루 10만명의 인파가 이태원에 몰릴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용산경찰서는 어떻게 그런 예측을 할 수 있었을까요?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새로운 빅데이터 기술을 굳이 동원하지 않더라도 상황 파악이 가능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물론 인파를 사전에 예상하는 것과 현장에서 관리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위에서 언급한 기술적 해법 중에는 현장 관리에 관련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기술로 해결될 문제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서울경찰청 종합교통정보센터 웹사이트에는 경찰이 개입해서 교통을 통제 및 관리하는 각종 행사 및 집회에 관한 정보가 올라옵니다. 10월 15일~16일 열린 이태원 지구촌 축제 관련 통제 공지는 등록되어 있지만, 10월 29일 공지사항에도 집회/통제정보에도 핼러윈 관련 내용은 없습니다. 공식적인 교통 통제가 아니더라도 경찰이 인력을 충분히 배치하지 않은 정황, 더구나 인파에 따른 사고 발생 우려를 언급하는 문건이 묵살-은폐된 정황 등을 고려하면, 참사에 대비하지 못한 것이 데이터가 없어서, 기술이 부족해서는 아니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술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사회를 개선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고, 그 중에는 사망자만 156명에 달하는 참사를 마주한 우리 사회가 모자란 부분을 고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도 분명히 있습니다. 더구나, 어려운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해줄 기술적 해법을 상상하는 것은 매혹적인 일입니다. 뉴스쿨 인류학과 교수인 섀넌 매턴이 스마트 시티에 대해 지적하듯 “도시 생활의 지저분함을 프로그래밍으로 처리하여 이성적 질서로 통제할 수 있다는 프레임”은 도시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회적 문제를 첨단 기술의 힘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패러다임에 강력한 매력을 부여합니다.

하지만 이번 참사의 발생 과정에는 그 어떤 기술적 미흡함보다도 인적인 문제, 특히 자원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에 관한 의사결정의 문제가 더 치명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의사결정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풀어가야 하며, 기술을 끼얹는다고 손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인파 10만명을 예상하고 사고를 우려하는 내부 인력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인파 관리를 위한 자원 배분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인파 10만명을 데이터로 예상하고 사고 대응 필요성을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알린다고 해서 자원 배분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새로 만든 시스템이 오작동할 가능성이나, 새 시스템 설계에 미처 반영하지 못하는 위험이 언제나 존재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한계는 차치하고서라도요.

마지막으로 두 가지 질문을 던져봅니다.

  • 최첨단 기술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일 때, 그 중요성이 가려지는 다른 논의는 무엇이 있을까요? 10·29 참사에 대한 응답으로 일각에서 주장하는 기술적 해법들은 그러므로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이 기술들이 안전을 지키는 효과가 있는지뿐만 아니라, 그 해법에 내재된 가설 즉 이번 참사가 어떤 기술적 미흡에 기인한다는 명제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시야가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지까지도요.

  • 이 기술로 가장 큰 도움을 받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예를 들어 매일경제 사설에서는 “첨단 기술을 재난 예방에 적극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므로 ”4차 산업혁명 기술 활용을 막는 규제는 걷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 윤석열 정부 출범에 앞서 발표된 110대 국정과제. 빅데이터, 드론과 스마트시티를 강조하는.
  • 이태원 사고 인파쏠림 알릴 ‘데이터’는 있었다···행정당국이 ‘활용’하지 않았을 뿐 (경향신문)
  • 강양구 페이스북 포스팅 (2022-11-04) “과학기술이 없어서 희생당했나”
  • 이태원 참사 재발방지, 인공지능이 대안이다!…중앙대 AI대학원, 딥러닝 기반 군중분석 기술 개발 (Ai타임스)
  • 황종성 NIA원장 “스마트시티 통해 재발 막는다” (스마트투데이)
  • ‘이태원 참사’ 병원 갔던 안철수…”AI 도입해 사고 막아야” (뉴스1)
  • 이태원 10만 명 인파 수, 정말 예측하기 어려웠던 것일지 최근 7년의 데이터를 살펴보았습니다. (캠페인즈)
  • 첫 112신고 오후 6시34분경, 이태원 인파 가장 빠르게 늘던 때였다 (경향신문)
  • 데이터는 말한다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고 (시사인)
  • How Halloween revelry turned to disaster in South Korea (Reuters)
  • Slippery, narrow and overcrowded alleyways: How the South Korea Halloween crowd crush unfolded (Straits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