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기술 리터러시를 위한 인터뷰 시리즈

2020-12-31

서울문화재단 예술교육 연구활동 긴급지원을 받아, ‘창의적 기술 리터러시’를 키워드로 작가 인터뷰를 진행.

인터뷰 목록

결과

문화예술교육 관점에 입각해서 기술교육활동을 펼쳐온 전문가들을 인터뷰하고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대안적이고 실험적인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어온 이들의 기존 활동과 향후 계획을 통해 문화예술교육 전반에 참고가 될 사례를 선보였다. 또한 해당 전문가의 보편적/지역특정적 관심사를 통해 동시대를 관통하는 맥락을 제시하고, 2020년 코로나19 라는 유례없는 상황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했는지 기록하였다.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한 전문가는 아래와 같다.

  1. 언메이크랩(구 청개구리제작소)은 “기술사회의 이행에서 만들어지는 변화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를 얘기 나누는 대안적 교육 프로그램과 연구 및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단체다. 다양한 활동 가운데 특정한 기술적 주제를 중심으로 오픈콜을 통한 전시, 강연, 토크, 워크숍 등을 진행하는 “포킹룸” 활동 또한 이어오고 있다.

  2.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Woman Tech Open Lab)은 “‘여성’과 ‘기술’에 주목하여 기술을 공유하고 함께 배우며 사회에서 예술과 기술의 역할과 의미를 찾는 커뮤니티”로, 기술, 사회, 여성의 접점에서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3. PROTOROOM 은 테크놀로지 매체 기반의 키트(KIT)로 작업을 하는 메타미디어 콜렉티브이다. 여기서 키트는 감각하고 사유를 이끄는 메타적 매체로서, 컴퓨팅 매체의 근본적인 요소를 직접 감각하는 기회와 함께 생태계의 일부화된 테크놀로지에 대한 사유과 담론을 가능하게끔 연결해주는 매개자가 된다.

메이커 운동과 코딩 교육의 대두 이후 한국 문화예술교육은 예술-기술 교육의 홍수를 맞이했다. 기술 변화와 문화예술은 언제나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으나, 근래 디지털 기술이 사회 거시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가속화함에 따라 문화예술적 실천 및 담론, 나아가 공공 의식 속에서 기술이 갖는 중요성은 특히 커지고 있다. 이런 경향을 반영하여 문화예술 교육 활동 또한 메이커 운동, 코딩 등 융합기술을 반영하는 접근을 늘려왔다. 나아가 최근의 데이터/인공지능 기술 대두로 인해 전세계적 변화와 파급력이 큰 이들 기술에 대한 사회적 이해 및 적응 전략이 요청되고 있으며, 실제로 현장에서 이들 기술에 대응하는 움직임이 존재한다. 이러한 접근은 현재성을 지닌 기술을 다룬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능성을 갖는 한편, 바로 그 시의성 때문에 해당 기술을 촉진시키고자 하는 국가정책 및 산업적 욕구의 자장 아래 놓인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로서의 직업교육화의 위험 또한 갖는다. 이러한 논의에서 ‘시민’을 일방적인 교육의 대상이 아닌 창의적 표현의 주체이자 기술적 주체로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자기표현수단이자 비판적 시민 사고력으로서의 기술매체 리터러시의 증진이 어떻게 가능할지는 미결의 과제이다.

플랫폼 노동의 대두와 팬데믹이 여러 사회적 격차를 한층 부각시키는 상황에서 누구를 위한 기술, 누구를 위한 교육을 추구하는지 또한 중요한 의제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 아래 IT 인력을 수만 단위로 양성한다는 국가적, 산업적 흐름에서 코딩과 아두이노의 주입식 정규교육화 현상이 기술과 시민의 관계를 가깝게 해줄지 의문이다. 또한 기술교육이 기술 격차 해소나 교육 복지에 관한 논의에 기반하지 않을 경우 구조적 현상인 기술 격차를 개인의 역량으로 돌리는 신자유주의적 인식의 위험이 존재한다. 지역, 젠더, 계층 등 다양한 결로 존재하는 이와 같은 격차를 어떻게 인식하고 드러내며 격차 심화가 아닌 해소의 방향에 기여하는 교육을 고민할 필요성이 요청된다. 특히 팬데믹 상황에서 기술 접근성의 차이 및 디지털 리터러시의 격차가 교육 격차로 직결되고 사회문화적 격차가 강화되는 악순환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같은 고민은 더욱 절실해진다.

문화예술교육과 기술교육은 어떻게 접목되어야 하는가?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문화적 주체, 기술적 주체로서의 시민을 교육하는 활동은 어떻게 가능한가? 현재성을 지닌 기술과 예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관련 활동을 꾸준히 이어온 전문가 인터뷰는 이와 같은 탐구의 귀결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인 대화의 출발점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환경 속에서 문화적 기술적 격차에 대응하고, 지역에서 출발하지만 지역을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와 담론을 통해 연대하는 비전을 향한 교육활동 모델을 살펴본다.

인터뷰는 2020년 10월-12월에 걸쳐 진행되었다. 언메이크 랩은 과정과 맥락을 드러내는 질문의 중요성, 완성된 형태보다 과정을 공유하는 연구 및 전시 형식의 가치, 연구교육활동의 사회적 축적의 필요성, 그리고 담론이 제시하는 비전이 현장에 적용되고 제도로 정립되는 간단치 않은 과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과의 인터뷰에서는 남성 편향으로 대표되는 기술 격차의 구조적 특성, 여성주의과 기술 담론의 교차점, 기술과의 화해가 열어주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가능성들, 커뮤니티 빌딩과 협업의 어려움과 가치 등을 다룬다. 프로토룸과의 대화에서는 메타미디어로서의 컴퓨터 기술을 통해 관점과 감각이 확장되는 가능성, 재난 상황에서 더욱 부각되는 기술 주체성의 필요와 의미, 그리고 효율과 최적화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발전이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는 위험에 관해 이야기했다.

인터뷰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도구적 사용법 내지 기능적 유창성을 넘어서는 메타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의 중요성이다. 이러한 비판적 리터러시는 또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나누어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기술의 작동 원리가 어떠하며 그것이 무엇을 가능케 하는지 이해하는 일, 나아가 사유와 감각의 확장을 유도하는 매체로서 활용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기술이 사회, 문화, 정치적 맥락과 어떻게 연결되어 작용하는지, 자기 자신과 어떤 식으로 관계맺고 있는지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에 가깝다. 이같은 여러 관점이 칼로 자르듯 구분되는 것은 아니며, 인터뷰이들도 지적하듯 기능적 숙련이 보다 나은 비판적 리터러시를 가능케 하거나 그 반대의 방향으로 상호보완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흔히 볼 수 있는) 효율성과 최적화, 기능적인 것이 최우선적으로 강조되는 접근에서 기술은 불투명한 블랙박스가 되고 교육은 기술과의 거리를 좁히는 관계맺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위험이 크다.

문화나 예술이 사회적 맥락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처럼 기술 또한 중립적이지 않다. 현재 기술이 취하는 형태는 어떤 당위적이거나 자연적인 법칙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우연성에 기반하는 것으로, 주어진 불변의 현실이 아니라 다를 수도 있다(it could be otherwise). 국가적 산업적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맞물리는 기술은 소비 상품으로서, 통제의 수단으로서, 착취의 도구로서 작용한다. 동시에 기술은 보다 민주적인 현실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사고와 감각과 상상력과 미래를 확장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명제는 상호모순이거나 배타적이지 않으며, 기술을 둘러싼 다양한 정치경제적 맥락과 행위에 힘입어 전자의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고 후자의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맥락에 주목하지 않고 기술을 그냥 주어진 도구로만 바라볼 때, 기술은 현재 존재하는 사회-정치-경제적 상황 내지 권력관계를 재생산할 뿐이다. 만약 교육의 역할이 현재 상태를 단지 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의문시하고 그 안에서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을 육성하는 것이라면, 기술 교육 또한 기술의 사회적 맥락을 질문하고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인터뷰에서 또 공통적으로 드러난 것은 역사적 맥락과 변화의 중요성이다. 일련의 활동을 통해 담론과 개념이 제시되고 주류의 언어로 편입되거나 제도화된다고 해서 해당 담론의 기능이 완료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메이크 랩의 문화예술 개념에 관한 이야기 등에서 볼 수 있듯, 꾸준히 질문하고 자기언어화하는 변화와 개입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실천은 방향성을 잃는 위험에 처한다. 결국 교육 실천에서 담론의 내용, 담론이 대두된 사회역사적 맥락, 현재 상황과 주변 맥락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꾸준한 대화가 빠져서는 안 된다. 4차 산업, 융복합 등 거대한 키워드가 범람하는 상황에서 더욱 유념할 지점이다.

한편 인터뷰이들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는 전문성은 기술과 교육에 관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교육 활동 또한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일어나는 실천으로, 다른 관계 없이 교육자와 배우는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활동이 아니다. 인터뷰이들은 예술가로서 또 교육자로서 교육 활동을 가능케 하는 여러 상황과 기관 등의 행위자에 관한 인사이트 또한 제공한다. 맥락, 관계, 구조를 중요시하는 메타-리터러시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들의 기술 관련 전문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문화예술과 융복합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맥락에 관한 이해도이다. 사람, 공간, 기관, 지원사업 등의 관계와 작용을 살펴보는 구조적 리터러시 내지 기관 리터러시(institutional literacy)가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기술과 사회적 상황이 급변하는 지금, 우리 손의 도구와 기술이 무엇인지 읽어내는 힘을 가진 교육적 관점의 정립은 어느 때보다 크게 요청된다.